옛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해부학적 지식이 1도 없어도 당연히 배 속에 배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는 모순적인 표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선후(先後), 대소(大小), 주부(主部)에서 뒤의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들도 있을 수 있고 이를 강조하고자 만든 속담일텐데, 대상포진과 대상포진후신경통 역시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상포진이란?
원인과 증상을 간략히 살펴보자.
대상포진(Shingles)은 포진 바이러스인 헤르페스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가 체내 신경분절을 통해 접종되어 피부에 통증, 발진, 수포를 만들어내는 질환으로 피부과에서도 드물게 입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어릴 적 예방 접종을 하는 수두의 원인 바이러스와 비슷한 사촌 바이러스인데, 수두가 치료된 또는 예방 접종으로 쉽게 넘어간 후에도 이 수두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고, 체내에 오랫동안 숨어있다가 면역이 약해질 때 다시 활성화되어 대상포진을 야기합니다.
주로 60세 이상의 고령자이거나 에이즈(AIDS) 혹은 항암 치료 환자에서 체내의 면역기능이 약화되었을 때 잘 생기며, 요즘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젊은 층에서도 상당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한의원을 할 때 오신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들 중 의외로 젊은 층의 환자들이 꽤 계셨는데요, 병력 청취를 할 때 ‘회사 이직으로 야근이 많아서’, ‘돈 문제로 소송을 하고 나서’ 등 피로와 스트레스의 유발인자가 무척 많았습니다.
대상포진의 증상은 초기에 발열이나 오한 또는 근육통(어깨, 옆구리, 허리 등) 등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마치 감기같이 느껴질 수 있고, 또는 요통이나 등 통증으로 한의원에 내원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증상들이 대상포진의 주된 증상이 수포와 발진이 나타나기 전에는 대상포진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제가 구미에서 진료할 때 오신 40대의 남성 환자가 한쪽 허리 통증을 호소하셨는데, 근육의 단축이나 경결 등도 없었고 요추 굴곡 및 하지 좌골신경 검사(SLR 등)에서도 모두 음성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상포진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침부항 치료를 했는데, 한참 지나서 다시 내원하셨을 때 그 이후 대상포진 발진과 수포가 일어나서 바로 피부과 치료를 받았고 그 결과 호전이 빨랐다고 제게 감사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대상포진은 수포(물집)와 같은 발진이 신경을 따라 일측성으로 퍼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안면에 눈 주위에 생기든 어깨나 옆구리에 생기든 척추 라인을 넘어서 대칭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신기하게도 딱 한 케이스 등 뒤의 척추 라인을 넘어 대상포진이 발생하신 분을 본 적이 있긴 한데요, 대부분은 한쪽으로만 발생합니다.
(이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분은 초기 대상포진 수포 발진이 등의 양쪽으로 생기셨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수포가 치료되고 나서 생긴 자국들입니다.)
다만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주로 신경의 감각분지에만 침범하기 때문에 통증이 극심하게 됩니다. 물론 매우 드물게 운동신경에도 침범하여 팔다리를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대략 5% 정도라고 하며, 이는 대상포진의 주된 증상이라기 보다는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생기는 일종의 합병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전요화단(纏腰火丹)이라고 고전 의학 서적에 기술되어 있는데요, 이 뜻은 “허리를 둘러싸는 불과 같은 빨간 피부질환”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대상포진이 상당수 몸통을 둘러 붉은 수포성 발진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네요.
배보다 더 무서운 배꼽! 대상포진후신경통
자, 이제 대상포진은 다 나았습니다. 약간 흔적은 있어도 수포도 사라지고, 통증도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상포진이 있던 부위로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 고추가루를 뿌리는 듯, 칼로 베는 듯한 통증들이 하루에도 수시로 그것도 예고도 없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대상포진이 시작하려나??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예전의 ‘그’ 수포는 다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계속 지속적으로 수시로 아픕니다. 깜짝깜짝 놀랄 만큼 아파서, 이젠 불안해 지고 우울해 졌습니다. 알아보니 대상포진후 신경통(Post Herpetic Neuralgia, PHN)이라고 합니다.
이 대상포진후신경통은 대상포진을 앓고 난 피부분절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남기고 간 신경병증성 통증(Neuropathic pain)인데, 대상포진 후에 생기는 흔한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젊은 청장년층 환자에서는 이 후유증의 발생률이 꽤 적은 반면, 노인이나 극도로 체력이 허약해진 사람 또는 당뇨환자나 면역억제치료 중인 환자에서는 이 발생률이 높아집니다.
2016년 경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대상포진후신경통 발생률을 조사한 역학 데이터가 국제학술지에 보고되었는데, 연구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진단받은 환자수가 12만 7천 여명으로 전반적인 발생률이 인구 1천명/년 당 2.5명(즉, 1년 동안 인구 천 명 중 2.5명이 발생한 것)이며, 이는 해마다 꾸준히 약 1만명 이상씩 증가되는 추세라고 합니다.
또 서울아산병원의 홈페이지에 언급된 역학 조사에 의하면, 60세 이상에서 6개월 이후에도 지속되는 통증을 경험하는 환자 비율이 20~50% 정도, 70세 이상에서는 50%가 이 대상포진후 신경통을 앓는다고 합니다.
이 대상포진후신경통은 며칠이 아니라 몇 달 심지어는 몇 년간 환자를 따라다니며 몹시 아프게 하는데, 부위도 등, 옆구리, 팔, 뒷목, 심지어는 얼굴에도 생기도 하고 환자들은 통증 외에도 극도의 불안, 위축, 우울감 등을 호소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환자가 제 진료실에서 아프다고 우는 모습을 보면, 이 대상포진후 신경통은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질환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학적 치료
면역봉독(아피톡신 봉독)
저는 지난 2013년도부터 대상포진후 신경통과 삼차신경통(Trigeminal Neuralgia, TN)에 아피톡신 봉독과 신경통 한약인 삼경탕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 치료법들이 각종 신경통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각종의 양방 치료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환자들에서 꽤 좋은 효과를 거둔 바 있고, 이는 저의 개인 웹사이트에 치료후기에 등재해 두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저의 개인 사이트에서 환자분들의 후기를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의료 광고법 상 로그인하신 분에게만 리뷰를 보실 수 있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늘 드리는 말이지만, 정확히 많이 알수록 더욱 더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