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이상은 과식하거나, 급하게 먹거나, 혹은 스트레스 받은 상황에서(꼴보기 싫은 사람과 밥먹거나, 꾸중을 잔뜩 들으면서 밥먹거나) 체한 적이 있을 겁니다. 이 때 명치부위(혹은 좀 더 위쪽으로 가슴까지)가 답답하고 꽉~ 막힌 듯 하면서 아프기도 하고, 메쓰꺼운 증상이 나타납니다.
어른들은 이 때 “체했다”, “체기가 있다”고 말씀하시죠. 경우에 따라 노련한 할머니(?)는 바늘 쌈지에서 바늘을 꺼내 머리를 한번 쓱쓱 긁고는 환자의 엄지손가락을 묶고는 “콕” 찔러 피를 빼내죠.
요즘도 가끔씩 이런 사혈요법을 받고도 잘 낫지 않아 한의원에 오시는 분 주로 소아들을 볼 수 있어요. 저도 어릴 때 옆 집 할머니한테 그런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 기억나는 말이 바늘로 찌르고 나니까 피가 났는데, 그 분이 “봐라~ 새까만 피가 나오네. 이게 언치면( ‘체하면’의 경상도 사투리) 이렇게 피가 새까맣다”라고 하셨어요.
한의학을 전공하고 나서 지금 그 상황과 그분의 말씀을 되뇌여보면 일부 일리는 있는데 주의해야 할 상황도 있습니다.
주로 소아들의 경우 저 방법이 도움이 됩니다. 소아들은 위장이나 창자 등이 짧고 작아 조금 급하게 먹거나 차게 먹게 되면 장운동성이 감소됩니다. 그러면 어른에 비해 복통도 심하고 심지어는 토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다행스러운 게 토하게 되면 위장은 곧 제 기능을 되찾고 완쾌됩니다. 또 소아들은 체기가 생기면 바로 38도 전후로 미열이 대개 동반되는데1, 역시 손가락의 사혈이 효과를 봅니다. 다만, 바늘로, 그것도 머리 두피를 긁고는 소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찌르는 것은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체했다”라는 증상이 음식물이 위장관 운동성을 일시적으로 감소시켜 윗배나 아래배 혹은 심한 경우 명치나 가슴까지 답답하게 하는 현상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원인은 한의학적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리하면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음식물의 양이 많았거나, 찬음식, 기름진 음식 등을 급하게 먹었을 때 입니다. 한의학적으로는 담적(痰積), 기체(氣滯)라고 진단합니다. 이 의학적 용어는 ‘동전의 양면성’을 가집니다. ‘담’이라는 말은 “체내에 발생하거나 유입된 비생리적 잉여 체액 혹은 산물”이라고 정의하는데요. 즉 너무 기름진 음식 혹은 빵과 같은 분식류 등이 나의 위장 기능이나 용량을 오버해서 들어와 소화시키지 못한 잉여 물질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산물이 ‘나’라고 하는 개체의 정상적이었던 위장 기능을 갑자기 일시적으로 셧다운(shut down)시켜 버렸다는 의미가 바로 ‘기체’입니다. 다시 말해 “담적”은 원인이 되고 “기체”는 그 결과가 되는 것이죠.
만약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꼴보기 싫은 사람과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식욕이 생기고 군침이 흐르고 소화가 잘 될까요? 아니겠죠. 정신적인 긴장, 우울감 등이 소화기의 운동성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켜 식사 후 답답하고 체기가 생기고 더부룩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바로 “기체”가 원인이 되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인 “담적”이 결과가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는 원인이 비교적 뚜렷해서 한방 치료로 잘 완치됩니다. 목표 “적군”이 있으니까 그 적군만 무찌르면 되는 것이죠.
둘째, 음식은 통상 먹던 밥, 국, 반찬 등 소화되기 어려운 음식도 아니고 천천히 먹었는데 더부룩하고 답답하고 어지럽고 하는 등 소화기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한의학적으로 비위허한(脾胃虛寒), 기허(氣虛) 등으로 진단합니다.
어릴 때부터 음식에 흥미가 없고, 깨작대고, 조금만 찬 음식이나 우유를 먹으면 설사하고 싫은 음식을 보고 구역감이 드는 등 다소 체질적으로 비위가 약한 사람이거나 위장 절제술이나 여타 수술 후 체력이 약해져 있는 사람 혹은 평소 불규칙한 식생활을 오래~ 해와서 위장의 기능이 약해져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입니다. 이들에게 생기는 체기, 더부룩함, 메스꺼움, 무른 설사, 두통, 현기증, 피로, 등 통증들은 음식물 때문이 아니라 원인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죠.
당연하겠지만 이들은 내과에서 처방해주는 소화제(훼스탈, 베아제 등)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위장관 운동성을 항진시키고, 소화액의 분비 기능을 증진시키고, 장의 흡수율을 촉진시켜야 이들의 “체기”는 사라지고 속은 편안해집니다. “아군”의 전투력과 사기가 충만해져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환자들을 상담해보면 역시 “음식을 잘못 먹어서, 과식해서” 등 첫번째 원인으로 진단하기 쉽지만, 조금만 더 진맥해보고 장음을 청진해보면 대부분 위나 장이 허해서 발생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예~ 막히고 체한 음식 잘 뚫어드리는 약을 처방하겠습니다”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처방은 위나 장을 보강하는 “보약”을 처방해드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앞으로 포스팅할 역류성식도염(GERD)이나 위염(Gastritis), 위궤양(Gastric Ulcer), 궤양성대장염(Ulcerative Colitis) 등도 위산이나 염증을 공격하는 양방 내과 치료와는 달리, 저는 식도 점막의 재생을 촉진하거나 위나 장기능을 증진시키는 쪽으로 한약을 처방한답니다.
결론적으로,
음식물 ‘체기’가 생기려면 대개 위장이 먼저 약해져 있는 상태다!